crossorigin="anonymous">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 crossorigin="anonymous">-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조제 - 다르지만 사랑했던, 닿을 수 없는 거리, 함께했던 계절
본문 바로가기
감정별 영화 큐레이션

조제 - 다르지만 사랑했던, 닿을 수 없는 거리, 함께했던 계절

by flavorflux 2025. 5. 13.

《조제》(2003, 일본 / 2020, 한국 리메이크)는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를 다룬다. 이 영화는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끝나가는 시점을 더 오래 응시한다. 그래서 이별은 갑작스럽지 않고, 서서히 스며들며 감정을 뒤덮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툴고 조심스럽다. 주인공들은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작고 단단하며, 조용하게 오래 남는다.

일본 원작에서의 조제는 장애를 가진 채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인물이다. 손에 닿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책 속을 살아간다. 그런 조제의 세계에 츠네오가 들어오고, 조용히 흔들림이 시작된다. 한국 리메이크에서도 조제는 고립된 공간에서 살아가며, 현서는 조제와 감정의 간극을 좁히려 애쓴다. 하지만 서로의 삶이 달랐고, 그 다름은 끝내 극복되지 못한다.

《조제》는 사랑이란 말로 정의되지 않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함께 있었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던 사이, 사랑했지만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영화는 그 감정을 억지로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 손끝의 머뭇거림, 문을 닫는 순간의 시선 같은 장면들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침묵과 간격의 언어로 말한다.

다르지만 사랑했던

조제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하반신을 쓸 수 없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책을 읽고 상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삶은 반복되고, 세계는 닫혀 있다. 그런 조제 앞에 어느 날 츠네오(또는 현서)가 들어온다. 처음엔 단순한 동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복된 만남 속에서 감정은 자라난다. 츠네오는 조제의 세계를 조금씩 열어주고, 조제는 자신이 감춰두었던 감정을 꺼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너무 달랐다. 조제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을 몰랐다. 츠네오는 조제를 아꼈지만, 조제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 간극은 작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벌어진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했지만, 그 마음으로 모든 차이를 메우기엔 현실이 너무 단단했다.

이 영화는 그 차이를 비판하거나 연민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제의 자존감, 츠네오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내며, 감정이 겹쳐지지 못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 사랑은 비극이 아닌 현실이 된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 그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자 결말이다.

“움직일 수 없던 건 몸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 출처: Pixabay

닿을 수 없는 거리

영화 속 두 사람은 가까이 앉아 있지만 마음은 항상 어딘가 멀어 보인다. 조제는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고, 츠네오는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지만, 가끔은 그게 더 큰 벽이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자주 멈추고, 침묵은 무거워진다. 이 침묵은 감정을 나누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조제》는 그런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뛰어나다. 좁은 방, 높은 침대, 계단 없는 세상,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창밖. 모든 배경은 조제가 살아가는 제한된 세계를 보여준다. 츠네오가 그 안에 함께 있으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는 그 세계 밖의 사람이다. 조제가 잠든 사이 떠나버린 그 장면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서로 닿을 수 없던 거리’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사랑은 있었지만, 함께할 수는 없었던 사이. 그 감정을 영화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차가운 식탁 위, 비 내리는 거리, 쓰다듬지 못한 손끝에서 관객은 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울림이 크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러간 감정들을 받아들이게 한다. 거리를 좁히려 했던 그 마음조차도 아름다웠다고.

함께했던 계절

《조제》의 계절은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부드럽게 흘러간다. 함께 걷던 골목,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로 나눈 어깨, 어설픈 요리와 조심스러운 웃음. 그 시간들은 짧지만 깊다. 그리고 그 계절은 어느 순간 조용히 끝이 난다. 특별한 이별의 말도, 눈물도 없이. 사랑은 그렇게 지나간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끝나버리는 관계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때 그 계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다정했던 순간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저녁 식탁, 창밖의 빗소리, 서로 바라보던 눈빛 같은 것이 더 오래 남는다. 조제가 혼자 남은 집에서 이전과 같은 일상을 반복할 때, 관객은 안다. 그 계절은 분명히 있었고, 사랑도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걸.

함께했던 계절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계절을 함께 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조제 안에, 그리고 관객의 마음속에 남는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끝난 뒤에야 더 깊어진다.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마음을 더 오래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함께할 수 없었던 사랑, 비 내리는 어느 계절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출처: Pixabay@holdmypixels

《조제》는 함께하기엔 너무 달랐고, 놓기엔 너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 그리고 표현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감정. 이 영화는 그 미묘한 간극 속에서 우리 모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의 사랑은 끝났지만, 함께했던 마음만큼은 계절처럼 다시 돌아와 우리를 물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