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origin="anonymous">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 crossorigin="anonymous">-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늦은 고백, 지나간 여름, 멀어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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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인생영화 큐레이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늦은 고백, 지나간 여름, 멀어진 이름

by flavorflux 2025. 5. 12.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는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을 법한 감정을 꺼내 보여준다. 말하지 못한 마음, 타이밍을 놓쳐버린 고백,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감정. 대만 영화지만, 그 감정선은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하고 진하다. 영화는 주인공 커징텅이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했던 션자이의 기억을 서른 즈음 다시 떠올리며 시작된다. 둘은 같은 반, 같은 교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인생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 시절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좋아했지만 서툴렀고, 표현했지만 닿지 않았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속에 남겨진 마음. 그 모든 것들이 서툴고 진심 어린 장면들 안에 담겨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첫사랑을 추억하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 첫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다. 어린 날의 우리는 무엇을 몰랐고, 무엇을 놓쳤는지, 그리고 무엇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 하굣길의 풍경, 시험지를 나눠주던 손, 책상 아래 숨겨둔 작은 쪽지. 모든 장면들이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그리운 사람보다, 그리운 시간.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건 션자이의 얼굴보다도, 그들과 함께했던 오후 햇살과 교실의 공기,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늦은 고백

커징텅은 션자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너무 서툴렀고, 장난처럼 흘렀다. 그는 공부 잘하는 션자이를 놀리면서 관심을 표현하고, 때로는 괜히 토라지며 거리를 두기도 한다. 반면 션자이는 조용히 미소 짓고, 커징텅의 감정을 묵묵히 받아준다. 둘은 분명 서로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고백이라는 한마디는 끝내 주고받지 못한다. 감정은 존재했지만, 말이 되기엔 너무 무르고 미숙했다.

영화는 그 고백의 실패를 드라마틱하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감정을 흘려보낸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누가 더 상처받지도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우리처럼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다. 고백하지 못한 이유는 겁이었고,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며, 서로가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 장면들을 보며 자기 안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 하지 못했던 순간, 지나고 나서야 후회한 감정, 상대가 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그 '늦은 고백'의 경험을 따뜻하게 다듬어 우리 앞에 놓는다. 그 고백이 늦었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그 시절의 마음은, 아무도 없는 책상 위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 출처: Pixabay@DeltaWorks

지나간 여름

영화 속 시간은 대부분 여름방학 즈음이다. 반팔 교복, 땀 흘리는 이마, 교실 창문 밖으로 스치는 바람. 그 계절은 고백을 준비하기에 가장 적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어지럽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감정은 많아지고, 관계는 미묘해진다. 커징텅은 션자이와의 관계 속에서 점점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만, 한 걸음 내딛는 타이밍은 계속 어긋난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이 영화에서 감정을 상징한다. 뜨겁고, 흐르고, 오래 남는다. 누구도 그 계절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모든 장면에는 여름이 배어 있다. 복도에 기대어 웃는 친구들, 함께 걷는 골목길, 우연히 스친 손끝. 그 순간들은 모두 그 계절에만 존재할 수 있었던 장면들이다. 영화는 그 여름의 감정들을 조용히 쌓아가며, 관객이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가게 만든다.

지나간 여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여전히 그 여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커징텅이 션자이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유도 그 감정이 여전히 자신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잊지 못한 감정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멀어진 이름

영화의 후반부, 션자이는 결혼한다. 커징텅은 그녀의 결혼식장에 앉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채다. 그는 말한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이제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이제야 나를 바라봐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

이름은 바뀌었고, 관계도 끝났지만,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첫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름은 머릿속에서 멀어졌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영화는 이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놓아둔다. 그래서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커징텅은 션자이와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녀를 좋아했던 시간은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 사람의 이름은 이제 불리지 않지만, 가슴 한편에 오래도록 남는다. 영화는 그 감정을 끝내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까지 남겨둔다. 관객의 몫으로.

 

“함께 달렸던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만을 남겼다.” / 출처: Pixabay@jdspixelworld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조용히 꺼내어 보여주는 영화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이별을 미화하지 않으며, 성장의 어느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난 사랑을 말하지 않고, 그 시절의 우리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