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퀸 오브 마이 드림스 (The Queen of My Dreams, 2024)》는 겉으로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체성을 둘러싼 충돌과 연결’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민자 가정의 딸이자, 여성, 무슬림, 예술가로 살아가는 ‘아잘리아’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 끝에는 늘 ‘엄마’가 서 있다. 엄마는 전통을 대표하지만, 사실 그녀 또한 ‘자신만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다. 그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었지만,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점점 닮아간다. 이 영화는 정체성, 가족, 여성, 문화라는 네 가지 층위를 감각적으로 겹쳐가며 우리가 살아가며 ‘이름’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정체성 – 나는 누구의 세계에서 살아왔는가
아잘리아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그녀의 문화적 뿌리는 파키스탄이다. 그녀는 무슬림이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여성이다. 이 모든 정체성이 그녀의 삶을 동시에 이끌고, 때로는 서로 충돌한다. 학교에서, 연인 관계에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순간들조차 그녀에게는 ‘정체성의 경계’를 드러내는 경험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경계를 비판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 속에서 아잘리아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단순히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더 퀸 오브 마이 드림스는 아잘리아가 세상과 충돌하는 장면보다 그 충돌 이후에 남는 감정을 더 깊이 보여준다. 어느 날, 그녀는 깨닫는다. 정체성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용기라는 것을 이 영화는 그 용기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담아낸다.
엄마 – 이해할 수 없었던 마음의 결
아잘리아의 엄마는 전통과 가족을 중시하는 파키스탄 여성이다. 딸에게는 늘 보수적이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때로는 거리감 있는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엄마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그가 단순한 ‘보수적인 어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엄마 또한 젊은 시절 사랑을 위해 도망쳤고,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을 감춰야 했던 사람이다. 그녀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자신도 같은 고통을 겪었기에 더 단단하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세대와 문화의 차이 속에서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과 걱정의 본질은 같다. 이 영화는 엄마를 변명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대신, 한 세대를 살아낸 여성의 선택과 침묵을 고요하게 조명한다. 아잘리아가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 그녀가 들려주던 이야기의 맥락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 관객은 두 여성이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진짜 가족’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이해는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감정의 깊이에서 온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 – 나로 살아간다는 선언
이 영화의 제목처럼, 아잘리아는 스스로를 “드림의 여왕”이라 부른다. 그 말은 단지 이상을 좇는 낭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주체적으로 껴안으려는 선언이다. 그녀는 세상이 붙여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어릴 적에는 부끄러웠던 ‘파키스탄 이름’을 이제는 자랑스럽게 발음하고, 자신의 몸과 얼굴, 언어, 신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 변화는 갑작스러운 각성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과 관계의 틈에서 조금씩 자라난 결과다. 그녀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기 이전에, 나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이 선언은 엄마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이민자 정체성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로 살아가기로 한다. 더 퀸 오브 마이 드림스는 그 선언을 아주 따뜻하고 섬세하게 담아낸다. 관객은 그녀의 말보다 그녀가 머무는 침묵에서 더 많은 진심을 읽게 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더 퀸 오브 마이 드림스는 단지 여성의 이야기, 혹은 이민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정체성, 관계, 마음속 진심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을 걸어온다. 딸과 엄마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 둘은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언어를 배웠다. 그 언어는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방식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지금,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더 퀸 오브 마이 드림스는 그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감정별 영화 큐레이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 벨에포크 - 잊힌 감정, 재현된 시간, 머물 수 없는 순간 (1) | 2025.05.09 |
---|---|
퍼펙트 데이즈 - 반복되는 하루, 조용한 빛, 작은 기적 (0) | 2025.05.08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감상 (시간, 기억, 그리고 엇갈림의 아름다움) (0) | 2025.05.07 |
패스트 라이브즈의 인연, 시간, 놓친 사랑의 조용한 흔적 (0) | 2025.05.06 |
퍼스트 카우 감상 - 고요, 우정, 그리고 함께 버티는 시간 (0) | 202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