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홀드오버스 감상 (겨울, 고립,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온기)

《더 홀드오버스》(The Holdovers, 2023/2024 국내 개봉)는 겨울 방학 동안 학교에 남겨진 세 사람의 이야기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철없지만 외로운 학생, 상실을 견디는 조용한 급식실 관리자, 그리고 인생이 꼬여버린 채 냉소로 자신을 감추는 교사. 이 영화는 바로 그 ‘남겨진 사람들’의 겨울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그 겨울이 끝날 때쯤, 관계와 감정이 천천히 녹아드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데 있다. 폴 지아마티의 깊이 있는 연기와 알렉산더 페인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은 잔잔하지만 오래가는 여운을 남긴다.

“추운 계절이었지만, 그 시간은 따뜻하게 남았다.” / 출처:Pixabay@AlainAudet

겨울 – 멈춰버린 시간 속 관계

겨울은 이 영화의 정서를 규정짓는 핵심 배경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차갑고, 창밖의 풍경은 눈으로 덮여 있으며, 학생 대부분은 떠나버렸다. 남겨진 사람들만이 그 안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겨울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이들이 ‘관계에서 밀려난 시간’을 의미한다. 교사인 폴 헌 햄(폴 지아마티)은 학생들에게 인기도 없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고립된 존재이다. 그는 고전문학을 가르치며, 규칙을 집착적으로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생에서 실패했던 수많은 후회들이 숨어 있다. 그와 함께 학교에 남은 학생 앵거스는 처음엔 단지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족에게도, 학교에서도 완전히 버려질 위기에 놓인 아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엔 전혀 교감이 없다. 하지만 폐쇄된 공간과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 서로의 약점과 상처가 조금씩 드러난다. 그 과정을 이끄는 것은 ‘겨울’이라는 배경이다. 사람이 가장 외로워지는 계절, 관계의 외곽에 머문 사람들끼리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시기. 그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고립 – 닫힌 마음이 천천히 열릴 때

이 영화의 중심에는 ‘고립’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 고립이 아니다. 각 인물은 자신만의 상처와 외면 속에서 스스로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급식실 책임자 메리 역시 고립된 인물이다. 그녀는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고, 그 상실감 속에서 조용히 일상을 견뎌낸다. 그녀의 고통은 과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 짧은 대사, 그리고 따뜻한 식판 속에서 은근하게 전달된다. 폴 역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와인을 훔쳐 마시거나 의도치 않게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들 속에서 그의 고립은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앵거스는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어른들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다시 배우게 된다. ‘고립’은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지만, 놀랍게도 그 고립이 이들을 연결시키는 연결고리가 된다. 감독은 이를 과장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눈 덮인 캠퍼스를 걷는 장면,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는 장면, 고요한 식사 시간 속의 작은 대화. 이 모든 순간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조용한 시도들이다. 닫힌 마음은 소리 없이, 하지만 분명히 열리고 있다.

남겨진 사람들의 온기 –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게 될 때

《더 홀드오버스》는 결국 ‘함께함’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이다. 이야기 속 세 인물은 절대 가족이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공통점이 거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주는데 폴은 앵거스에게 처음으로 “이 세상에 너를 기억할 누군가가 있다”는 경험을 준다. 그건 훈육도, 가르침도 아닌, 그저 조용한 관심이다. 메리는 그 둘 사이의 공기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말은 없지만, 식판 위의 따뜻한 음식, 지친 손을 감싸는 손길, 그런 것들이 온기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 그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그 온기는 잠깐 스쳐간 겨울이지만, 그 사람들 안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리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조용하게 스며든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온기다.

《더 홀드오버스》는 관계에 대한 영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관계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계절은 겨울이고, 사람들은 어딘가에 남겨져 있다. 하지만 그 추위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그 시간은 따뜻하게 남는다. 감정은 말로 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눈이 오는 날에 같은 공간을 걸어주는 것, 가끔은 그게 사랑이고, 위로이고, 기억이다. 《더 홀드오버스》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