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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 선택의 무게, 연대의 힘, 그리고 인간 존엄에 대하여 내일을 위한 시간 (Two Days, One Night, 2014)은 극적인 장면 없이도 우리를 끝없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한 사람의 해고가, 열여섯 명의 동료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설정. 그 설정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사회 시스템, 인간관계, 그리고 개인의 존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산드라'는 병가 후 복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동료들에게 ‘보너스를 받을 것인가, 산드라가 복직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한다.대부분은 보너스를 선택하고, 산드라는 월요일 아침까지 일일이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선택의 무게영화의 초반, 산드라는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태다. 우울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병, 복직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 그리고 .. 2025. 4. 21.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우정의 균열, 비교라는 상처, 그리고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Bridesmaids, 2011)』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웃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안에 누구나 겪는 감정의 균열, 우정의 복잡함, 그리고 비교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섬세하게 담아낸다.애니는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가 처한 현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을 둘러싸고 느끼는 소외감, 그리고 ‘나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찌른다.관계는 시간이 지났다고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이 흔들릴 때, 그 관계들은 더욱 쉽게 흔들릴 수 있다.우정의 균열애니와 릴리언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모든 고민을 공유했고, 같이 웃고 울며, 각자의 삶의 배경이 되어주던 관계.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의 위치가 조금씩 .. 2025. 4. 21.
벌새 –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침묵의 언어, 그리고 기억 속의 파동 영화 벌새는 한 소녀가 겪어 내는 아주 개인적인 성장기를 통해 시대 전체의 감정을 관통하는 영화이다. 이 작품은 크고 눈에 띄는 사건 없이도 삶의 격동을 정제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은희의 눈을 통해 우리는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과 그 시절의 공기랄까 분위기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된다.감정은 작고 조용하게 흔들리지만, 마치 유리잔에 담긴 물결처럼 그 파장은 오래 남는다. 『벌새』는 그 작은 물결 하나하나가 어떤 울림으로 이어지는지를 묵묵히 지켜보게 된다.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희는 서울의 평범한 중학생이다. 그녀는 특별한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 속에서 삶의 단면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답게 얽혀 있는지를 영화에서는 정교하게 보여준다.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엄격함이 있고 .. 2025. 4. 21.
눈먼 자들의 도시 – 빛을 잃은 도시, 인간성의 붕괴,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희망 『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2008)』는 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인간성을 잃어갈 수 있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실명 현상이라는 독특한 재난을 통해, 문명과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 본연의 민낯을 폭로한다.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려는 의지'를 잃어버린 세상. 그 안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적이지만 분명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빛을 잃은 도시영화는 도시 한복판, 운전 중이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시작된다. 그의 시야는 깜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유를 들이부은 듯 새하얗게 번진다. 이전까지 당연했던 시각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도시는 그 공포를 ‘질병’으로 간주하며 가장 먼저 ‘격리’라는 조치를 택한다... 2025. 4. 21.
파일럿 – 착륙 없는 하루들, 다시 날아오르는 용기, 그리고 진짜 자아를 만나다 파일럿은 단순히 ‘남자가 여자 행세를 하며 취업을 시도한다’는 코믹 설정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 중심엔 누군가의 아빠이자, 한때는 하늘을 날던 사람이자, 삶의 정체성과 마주한 평범한 한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진짜 나로 다시 날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다.영화는 좌절과 실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삶의 조종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에게 유쾌하지만 절절한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도 아직 비행 중이에요. 그러니 착륙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조용히 속삭인다.착륙 없는 하루들한정우(조정석)는 한때 잘 나가던 민항기 조종사였다. 흔들림 없는 제복, 안경 너머의 당당한 눈빛,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순간의 전율. 그 모든 건 이제 추억이 되었다.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고와 억울한 해고.. 2025. 4. 21.
그녀 – 마음 없는 시대에 사랑을 배운다는 것, 외로움의 형태, 그리고 진짜 교감은 무엇인가 그녀 (Her, 2013)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다. 현란한 액션도, 자극적인 대사도 없다. 하지만 그 조용한 영화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느낀다. 스마트한 미래 도시, 감정이 복잡한 남자,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여자 사만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것은 사랑의 가장 낯설고도 깊은 얼굴이다.이 영화는 "AI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단순한 플롯을 가장 섬세하고 시적인 감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테오도르가 겪는 상실과 회복, 사만다가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자신의 외로움까지.그녀는 결국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마음의 온도’를 꺼내 보게 만든다.마음 없는 시대에 사랑을 배운다는 것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편지 작성 대행가이다. 그는 타인의 .. 2025.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