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영화 같다’는 말을 아주 극적인 순간에 쓰곤 한다.
불꽃 튀는 갈등, 드라마틱한 반전,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들.
그런데 영화 《원스(Once)》는 그 반대다.
이 영화엔 소란스러운 장면이 없다.
울라고 등을 떠미는 클라이맥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말도 많지 않았는데 마음은 묘하게 흔들린다.
소리도 작았는데 그 조용한 음악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먼저 ‘여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무언가 확실하게 이뤄진 건 없지만,
그 애매하고 담백했던 감정들이,
오히려 더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는다.
1. 줄거리 - 이름도 명확한 관계도 없이, 그저 음악으로 연결된 두 사람
《원스》의 무대는 아일랜드 더블린.
바쁜 일상 속에서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리,
그곳에서 한 남자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지나가고,
그의 노래는 공기 속에 흩어질 듯 조용히 머물 뿐이다.
그는 이름도 없는 주인공이다.
그냥 ‘그(He)’로만 불린다.
그리고 노래는,
그가 잊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노래를 듣고 발길을 멈춘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도 이름은 없다.
‘그녀(She)’로만 존재하는 인물.
체코에서 온 이민자이자,
딸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적인 여성.
하지만 그녀는 음악을 사랑했고,
남자의 노래에 담긴 감정에 조용히 이끌린다.
그녀는 노래가 좋았다고 말하며 피아노를 치겠다고 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만남은
단순히 감정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다정히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간다.
그들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이 연주를 하며,
녹음실을 빌려 데모 앨범을 녹음하는 과정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둘은 서로의 과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이전 연인을 잊지 못했고,
그녀는 가족과 자신의 현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감정은 더 조심스럽고 절실해진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연결은 더욱 단단하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2. 인상에 남는 장면 - 낡은 악기점에서 시작된 단 하나의 진심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또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마도 낡은 악기점에서
두 사람이 ‘Falling Slowly’를 처음 함께 연주하던 장면일 것이다.
그 공간은 아주 작고 소박했다.
빛이 따뜻하게 내려앉고,
사람도 없고,
그저 오래된 피아노와 기타 하나가 있을 뿐.
그리고 그들이 그 안에 앉아,
처음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고,
그가 기타를 조율하며 노래의 첫 소절을 띄운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노래를 타고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이 선명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어쩌면 이게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름 붙이지 않아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이 완벽히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은,
그들이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을
영원처럼 남기게 된다.
한 곡의 노래로 연결된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졌던 그 순간.
그 장면은 단순히 아름답기보단,
솔직해서 더 찡했고,
조용해서 더 깊었다.
3. 감상평 - 완성되지 않은 마음이 더 오래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영화
《원스》는 많은 걸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걸 느끼게 되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랫동안 마음이 울렁였다.
누군가를 다시 떠올렸고,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진심이었던 감정들을 떠올렸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모든 인연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서로를 아주 깊이 이해하고,
같은 시간을 진심으로 공유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이별이었다.
그러나 그 이별조차 따뜻하고 슬펐다.
그녀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음악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만든 노래는
마치 편지처럼 남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 인연에 대해,
그리고 음악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반드시 완성된 형태로 무엇을 얻지 않더라도,
그 감정이 진짜였다면,
그건 끝이 아니라 어떤 '머무름'이 된다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알려주었다.
마무리하며
《원스》는 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작고 조용한 감정들은
우리의 하루를 잠시 멈추게 하고,
아무 말 없이 위로해 준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한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흩어져 버린 감정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조각들을 다시 꺼내
따뜻한 빛 아래 놓아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오래도록 당신 안에 머물 것이다.